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본어 문서를 마주친다.

처음엔 가볍게 봤다. 배출 계수 표 하나, 설비 사양서 한 장. 그런데 거기엔 「排出係数」, 「エネルギー原単位」, 「Scope 3」 같은 단어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도 맥락이 영 이상하다. 탄소회계 도메인 특유의 뉘앙스는 일반 번역기가 잡아내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만든 게 EcoNiPass 일본어 학습 앱이다.


앱은 단순하다. HTML 파일 하나, 외부 의존성 없음. 카테고리 8개에 걸쳐 탄소배출 도메인에서 실제로 쓰이는 일본어 용어를 정리했다. 기초 용어부터 Scope 분류, 에너지, 설비, 조직관리, 데이터 시스템, 규제·제도, 그리고 현업에서 매일 보게 되는 UI 조작 용어까지.

학습 방식은 세 가지다. 카드 뒤집기로 한자 읽기를 익히고, 한자 낱자 분석으로 의미를 뿌리부터 파고, 4지선다 퀴즈로 확인한다. 그리고 Leitner Box — 오래된 기억술이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잘 기억하는 단어는 뒤로 밀고, 헷갈리는 단어는 앞에서 계속 마주친다.


직접 겪은 일이다.

일본 고객사 회의에서 「省エネ法」 얘기가 나왔다. '에너지 절약법'이라는 건 알았는데, 왜 갑자기 이 맥락에서 나오는지 이해하는 데 한 박자 늦었다. 다음 번엔 달랐다. 「指定工場」, 「定期報告」 같은 연관 단어까지 세트로 알고 있으니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단어 하나를 아는 것과,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지를 아는 것은 다르다. 앱에는 각 용어마다 실제 문장 예시가 들어 있다. 「太陽光発電の導入により、CO₂排出量を年間500トン削減しました」 같은 식으로. 읽기만 해선 감이 안 오면 버튼 하나로 원어민 발음도 들을 수 있다.


치트시트도 만들었다.

업무 중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들 — 증가율 표현, 비교 표현, 기간 지정 방법, 단위 읽기 — 을 한 화면에 모아뒀다. 회의 중에 빠르게 확인하거나, 문서 작업 전에 워밍업 용도로 쓰기 좋다. 항목 옆의 재생 버튼을 누르면 발음도 바로 들린다.

모바일에서도 잘 돌아간다. 홈 화면에 추가해두면 앱처럼 쓸 수 있다. 출퇴근길에 카드 몇 장, 점심 후에 퀴즈 몇 문제 — 이 정도면 도메인 일본어는 충분히 따라잡힌다.


완벽한 일본어 학습 앱을 만들려던 게 아니었다. 탄소 배출 업무를 하면서 일본어 문서를 읽을 수 있을 만큼, 회의에서 핵심 단어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그 정도를 목표로 만든 도구다.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써보시길. 탄소를 줄이려다 일본어에 치인 사람들을 위한 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