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매력적인 착각
"AI가 반복 업무를 처리해주면, 우리는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 우리 모두 이걸 믿었다. 나도 믿었다.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 "드디어 잡일에서 해방되는구나" 싶었다. PRD 초안? AI가 쓴다. 경쟁사 리서치? AI가 한다. 회의록 정리? AI가 알아서.
그런데 현실은 좀 달랐다.
UC 버클리 연구팀이 200명 규모의 테크 기업을 8개월간 관찰한 결과가 이걸 정면으로 뒤집었다. AI 도구는 업무를 줄이지 않았다. 일관되게 업무를 강화했다.
한 엔지니어의 말이 뼈를 때린다.
"AI로 생산성이 올라가면 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덜 일하지 않습니다. 같은 양을 일하거나, 오히려 더 많이 일하게 됩니다."
— 이경훈, "AI가 일을 줄여준다는 착각에 대하여"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PM이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AI가 가장 먼저 바꾸는 건 일의 속도가 아니라 일의 범위다.
PM과 디자이너가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리서처가 엔지니어링 업무를 맡았다. 예전이라면 다른 팀에 요청하거나 외주로 돌렸을 일을 직접 하기 시작한 거다. AI가 지식의 빈 곳을 채워주니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 해보고 되면, 다음에도 직접 한다.
Lenny's Newsletter에 실린 "How to build AI product sense"에서 Tal Raviv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난 3개월간 Cursor를 일상 업무에 쓰면서, 3년간 ChatGPT를 쓴 것보다 AI 제품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많이 배웠다."
여기서 핵심은 코딩 에이전트가 작업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AI의 추론을 읽고, 도구 호출을 관찰하고, 컨텍스트 윈도우가 차오르는 걸 직접 본다. 엔지니어가 AI 제품을 만들 때 부딪히는 벽을 PM도 똑같이 경험하게 된다.
이게 바로 "AI 제품 감각"이다. 유튜브 영상 100개 보는 것보다, Cursor에서 직접 삽질하는 게 10배 낫다.
"잠자는 동안 AI가 뭘 할 수 있을까?"
Zapier의 Reid Robinson은 재미있는 프레임워크를 쓴다.
**"내가 잠자는 동안 AI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자동화 대상을 찾는다.
— How this PM uses MCPs to automate his meeting prep
그는 MCP(Model Context Protocol)를 활용해서 회의 준비, CRM 업데이트, 고객 피드백 분석을 자동화했다. 핵심은 AI를 "채팅 상대"가 아니라 **"백그라운드에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설계한 것이다.
PM에게 이건 큰 전환점이다. AI를 "질문하면 답해주는 도구"로만 쓰는 단계에서, **"24시간 돌아가는 나만의 운영 체제"**로 격상시키는 것.
AI PM 조수 2명을 만들어본 사람의 이야기
HT Hwang은 실전에서 써먹는 방법을 공유했다. 3단계 프롬프트가 꽤 실용적이다.
Step 1. 비판적 에이전트 투입
"2개의 에이전트를 만들어. 하나는 낙관적이고 속도 중심의 PM. 하나는 비판적이고 리스크를 중시하는 PM."
Step 2. 토론 과정 전체를 공유받기
"20라운드의 토론을 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공유해줘."
Step 3. 최종 결과 정리
"비판적인 에이전트를 설득할 수 있는 개선된 최소 스펙의 PRD를 작성해줘."
그의 핵심 인사이트:
"오히려 결론보다도 토론 과정이 더 도움이 됩니다. 제가 빠뜨렸던 내용을 다시 인식하는 데 확실히 효과적이에요."
— HT Hwang, "2명의 PM 조수를 만들어서 실전에서 써먹고 있습니다"
AI의 가치가 "정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놓친 질문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건 PM에게 특히 강력하다.
Man/Month의 종말
지금까지는 "어떻게 쓸 것인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
HT Hwang이 날카롭게 짚었다.
"AI가 대체하고 있는 것은 특정 직업이 아니라, Man/Month(노동의 양)으로 가치를 산정해왔던 방식 자체다."
— HT Hwang, "AI가 대체하고 있는 것은..."
로펌, 회계법인, 전략 컨설팅, 광고 대행사, SI. AI로 위기가 언급되는 산업의 공통점은 투입된 시간이 가치의 척도라는 것이다. 보고서 페이지 수가 품질 기준이 되던 시절. "이 프로젝트에 3개월, 5명 투입합니다"가 견적의 근거이던 시절.
AI가 뒤엎고 있는 건 노동의 양에서 해결의 질로 가치 평가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주커버그는 더 직설적이다.
"이제 'AI로 어떤 임팩트를 만들었는지'로 성과 평가한다."
— HT Hwang, "이제 AI 못쓰면 진급도 어렵습니다"
사용량이 아니라 결과. 얼마나 AI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뭘 바꿨느냐.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환상
이런 흐름 속에서 "프로덕트 엔지니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기획, 개발, 출시, 운영, 개선까지 제품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책임지는 사람.
이일민(Toby Lee)의 지적이 현실적이다.
"이러다 조금 지나면 '프로덕트 엔지니어 신입 모집' 공고가 날지도 모르겠다. 기획부터 운영까지 모든 걸 책임지는 능력을 가진 신입 개발자 모집합니다."
— 이일민,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주목받고 있다"
AI가 모든 걸 도와줄 수 있으니, 한 사람이 모든 걸 하라는 논리. 매력적이지만 위험하다.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는 다른 문제니까.
결론: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용기
이 글에서 다룬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한 가지가 있다.
AI 이전에는 능력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할 것"과 "안 할 것"을 나눠줬다. 못 하니까 안 했을 뿐이다.
AI 이후에는 거의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구분을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할 수 있는 걸 안 하는 건, 못 해서 안 하는 것보다 어렵다.
넓어진 범위를 다 채우려는 PM은 얇게 퍼진다. 넓어진 범위에서 무엇에 집중할지 정하는 PM은 깊어진다. 같은 도구인데 방향이 다르다.
AI 시대 PM의 핵심 역량은 결국 이것이다:
- 직접 만져봐라 — Cursor든 Claude Code든, 소비자용 UI를 넘어 코딩 에이전트를 써봐야 진짜 감각이 생긴다
- 시스템으로 설계하라 — "잠자는 동안 AI가 뭘 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자동화를 구축하라
- 토론하라 — AI에게 답을 구하지 말고, 내가 놓친 질문을 발견하게 하라
- 안 할 것을 정하라 —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능력
앞으로 1-2년, AI 도구는 더 강력해질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계속 넓어질 것이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정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끌려다니는 사람.
AI를 잘 쓰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대에, 새로운 격차는 거기서 생긴다.
이 글은 Contents Hub가 수집한 LinkedIn, Lenny's Newsletter, Hacker News 콘텐츠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참고 소스:
- 이경훈 — AI가 일을 줄여준다는 착각에 대하여
- HT Hwang — AI가 대체하고 있는 것은 MM으로 가치를 산정해왔던 방식
- HT Hwang — 2명의 PM 조수를 만들어서 실전에서 써먹고 있습니다
- Tal Raviv — How to build AI product sense (Lenny's Newsletter)
- Reid Robinson — How this PM uses MCPs to automate (Lenny's Newsletter)
- HT Hwang — 이제 AI 못쓰면 진급도 어렵습니다
- 이일민 — 프로덕트 엔지니어가 주목받고 있다
- Simon Willison — AI doesn't reduce work, it intensifies it